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베르트 슈만 (문단 편집) == 음악 비평가로서의 슈만 == 슈만은 "신음악지"를 통해서 당대 음악가들의 음악을 평가하고 비평하는 일도 했다. 특히 슈만이 초기에 감탄한 음악가는 같은 나이의 [[폴란드]] 피아니스트 [[프레데리크 쇼팽|쇼팽]]으로 1831년, "작품2"라는 제목의 비평에서 "모두들 모자를 벗어라. 여기 천재가 등장했다!"라고 말하며 쇼팽에게 엄청난 찬사를 보냈다. 하지만 쇼팽은 슈만의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찬사에 되려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고.[* '슈만이 나를 천치로 만들고 있다'라고 했다고 한다.] 또한 젊은 [[브람스]]를 발굴하고, 프랑스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[[엑토르 베를리오즈]]를 독일에 소개하는등 주목받지 못하고 있던 재능있는 음악가들을 널리 알리는 역할도 했다. 슈만이 음악 평론을 하는 방식은, 슈만이 직접 만든 "다비드 동맹"이라는 '''가상의'''[* 처음 보면 무슨 당대의 규모있는 작곡가 단체나 모임 같지만 순전히 슈만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. 다비드라는 이름의 어원은 성경의 '다윗과 골리앗'에서의 다윗으로, 동맹의 규모는 작지만, 다른 모임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을 함축한다.] 단체에서 단체의 멤버들이 가상의 좌담회를 한다는 형식으로 글이 쓰여지는 경우가 많았는데, 이 다비드 동맹의 멤버중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는 슈만의 의견을 드러내는 분신의 역할을 했다. 플로레스탄이 활발하고 적극적인 면모라면, 오이제비우스는 조용하고 명상적인 면모를 보였다. 비록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음악가라도 좋은 부분은 높게 평가할 만큼 [[대인배]]스러운 면모를 보이기도 했지만 당시 유행하던 [[로시니]]나 [[마이어베어]]의 오페라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. 그밖에 [[프란츠 슈베르트]]를 세상에 알리고, [[멘델스존]]과 마찬가지로 [[바흐]]의 음악을 재평가하여 바흐 전집을 출판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